제목 | [원광중] 익산열린신문 송태규의 열린칼럼=있어야 할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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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원창학원 |
작성일 | 20-04-27 1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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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중학교장 / 수필가
흐드러지다 못해 묵직하게 처져있던 벚꽃 송이가 바람에 꽃눈이 되어 날린다. 지천에 널린 꽃들이 눈길을 잡는다. 봄이 한껏 무르익었지만 여태 학교에 봄은 오지 않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시끌벅적할 교정엔 고요만 가득하다. 얼굴을 마주하는 개학이 늦어지면서 학교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학생이 없는 학교는 마치 주어가 빠져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비문처럼 마냥 허전하다.
지난주 선생님들께 인사 겸 전하고 싶은 내용을 담아 글을 띄웠다. 학생들에게는 원격수업 화면을 빌려 영상으로 인사를 전했다. 학생들은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 봉오리를 터트린다. 선생님은 칠판 앞에 서 있을 때 활짝 핀다. 그곳이 제자리다. 거기가 있어야 할 곳이다.
아침이면 당연히 학교로 향하던 일상이 흐트러졌다. 처음에는, 아니 아직도 누구나 혼란스럽고 적응하기 쉽지 않다. 선생님과 눈길을 맞추지 않고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곳에는 선생님의 잔소리도 없다. 점차 가정공동체 생활이 익숙해지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이제 교육계 전체가 지나온 자취를 돌아보면서 나아갈 방향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초유’. 요즘 흔히 듣는 말이다. 그 앞에 ‘사상’이라는 말이 붙으면 체감하는 부피가 엄청나게 커진다. 사상 초유 사태로 지구촌 구석구석이 호되게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인들 이 광풍을 피해 갈 도리가 있겠는가. 개학이 몇 차례 연기되었다. 어느덧 두 달이 가까워진다. 그동안 교실문은 굳게 닫혔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그런 가운데 한 가지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는 교육이 있어야 할 곳을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예측할 뿐 정확한 해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다. 놓아버릴 수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 하나는 있다. 함께 지혜를 모으고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간격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손에 잡히지 않는 끈끈함이 있다. 동료를 위하는 마음, 제자를 아끼는 마음, 이런 ‘함께’ 바이러스가 우리를 묶어두리라 생각한다. 학교에는 오로지 선생님들이 계셔서 가능한 일이다. 상황을 주시하면서 힘을 모을 것이다. 그것이 해야 할 일이다. 그 자리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다.
흔히 사람은 어려움에 닥쳤을 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고 한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없는 점심시간에 급식실이 멈췄다. 선생님들은 바깥에서 도시락을 주문하여 끼니를 때웠다. 영양사, 조리사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교직원이 불편했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급식실에서 선생님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 떠났던 입맛이 돌아왔다. 모두 흐뭇했다. 식사를 마친 선생님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마다 급식실 선생님들 얼굴이 벚꽃처럼 환했다. 그분들은 계셔야 할 자리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거기에 계셔서는 안 될 아버지가 병원으로 가신지 근 1년이 되어간다. 거의 매일 퇴근길에 들렀다. 코로나 19 사태를 맞으면서 갑자기 모든 문병 길이 막혀버렸다. 식사는 제때 하시는지 어디 더 불편한 곳은 없는지 애만 태웠다. 다행히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영상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전화기 건너에서 애써 눈물을 감추는 아버지를 보며 내 눈물 둑이 먼저 터졌다. 그날 간호사 선생님은 그가 있어야 할 곳에서 우리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신입생은 여태 담임 선생님 얼굴도 익히지 못했다. 원격수업을 대비하여 기껏 수화기를 타고 온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도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플 것이다. 어느 틈에 부지런한 선생님들이 꼼꼼하게 수강신청 안내 영상을 만들었다. 이렇게 있어야 할 곳, 제자리를 지키는 멋진 선생님이 계시다.
3학년을 시작으로 1, 2학년도 차례로 원격수업을 시작했다. 온라인 서버에 수업자료를 올리고 제대로 실행되는지 살펴야 한다. 수업을 마치면 학생들 출석과 수업량도 확인해야 한다.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익숙하지 않다.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자료를 정리하는 선생님이 계신다. 누구는 전화기를 붙잡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앵무새처럼 반복 설명을 하고 있다. 교무실이 북새통이다. 거기가 선생님들이 있어야 할 자리이다.
누구나 있어야 할 곳이 있다. 그런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소중한지 절실하게 깨닫는 요즘이다. 모두 제 자리에서 톱니바퀴처럼 할 일을 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은 지켜야 할 자리, 있어야 할 곳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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